2009년 5월 9일 지리산 樂 - 山

원래는 뱀사골 이끼폭포에 사진찍으러 가기로 한 약속이었는데, 검색하다 보니 이 장소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출입이 잦다보니 공단직원의 단속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판단을 내리고 최종적으로 전날 저녁에 계획을 철회하고, 동행과 어디로 갈지 의논한다. 조계산으로 먹자산행을 가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원래 목표가 지리산이었으니 코스를 바꾸어보아도 지리산으로 가는 게 나을 것만 같다.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지리산, 특히 세석이 나를 부르는 느낌을 외면할 수 없었다. -_-;
해서 결정한 코스는 백무동 기반 원점회귀 산행. 코스는 백무동-한신계곡-세석-장터목-백무동 되시겠다.

새벽 4시에 집을 나선다. 고속도로 중간에서 네비게이션이 생초 IC로 빠지라는 지시를 하는데, 잠이 덜 깬 것인지 '무슨 소리야? 함양 IC에서 나서야지' 하고 지나치기를 주장했는데, 생초 IC를 지나치자 마자 머릿속에 번뜩하며 오도재라는 존재가 떠올랐다. 아뿔싸, 생초 IC에서 나가는 게 더 나았는데. 요 한두달 동안 뱀사골 근처를 자주 다녀서 자연스레 함양 IC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나 보다. 그러나 뭐 이왕 지나친 것 어쩌겠는가. 차라리 함양 읍내에서 아침을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길 수 밖에.

이렇게 해서 백무동 주차장에 차를 세운 시각은 6시 15분경.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6시를 넘어서 그런지 벌써 주차원께서 출근해 계신다. 못 본 척 지나치려 했으나 차를 세우고 산행 채비를 하고 있는데 옆에 와서 주차비를 달라고 하길래 눈물을 머금고 주차비를 지불. 그런데 2천원밖에 안 해서 놀랐더니 생각해 보니 오늘 타고 온 차는 경차였군. 오호.

한신계곡은 지리산길 중에 가장 최근에 개척된 길 중의 하나라 꽤 험한 편이다. 게다가 길이도 만만치 않고 보니 세석으로 오르는 길은 시간도 꽤 걸리고 체력적으로도 매우 도전적인 코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백무동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을 오르내리려는 사람들인지라 한신계곡은 역설적으로 매우 한산한 편이기도 하여 굳이 체력적인 난관을 무릅쓰고라도 이편으로 오르기로 한다.



지리산에는 수많은 계곡이 존재하고 유명하고 규모가 큰 계곡만도 여러 개가 있지만 다들 자기 색깔이 다르다. 칠선이야 벌금이 무서워서 드나들어 본 적이 없으니 논외로 치고, 뱀사골이 길고 부드럽고 유려하다면 한신계곡은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아름답다. 뱀사골이 조선 여인네의 풍모를 가졌다면 한신계곡은 잘생긴 농군의 모습이랄까. 가내소 폭포를 지나면서부터 계곡길은 험하고 힘들어지진다.
집채만한 돌덩이들이 유려한 폭포와 연못과 함깨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란. 그나마 비교적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코스는 계곡 중간쯤에서 끝나고 이제부터는 내리 급경사다. 같은 길이라지만 올라올 때와 내려갈 때가 어찌나 다른지, 마치 다른 길에 온 것 같다. 초반에 중간중간 다리를 건너면서 사진도 찍고 한가롭게 계곡의 풍경을 즐겼지만 이제부터는 말을 내뱉기도 힘들다.

중간에 다른 산악회에서 낙오된 분 관련하여 사건이 좀 있었지만 이건 나중에 따로 얘기하기로 하고 이렇게 해서 약 3시간 30분만에 세석대피소 도착. 세석이닷! 오랜만이야! (라지만 실은 마지막으로 온지 5개월밖에 안 됐다) 올때마다 가슴을 뛰게 하는 이 산중의 넓은 공간이란.

세석에서 간단히 커피를 끓여 마시고 사과를 하나 깎아서 나눠먹은 뒤 장터목을 향해 출발한다. 주능선이 개방된지 열흘도 안된 참이라 아직 사람들이 꽤 많다.

촛대봉을 오르며 세석대피소를 되돌아본다. 꽤 덥고 연무가 짙은 날씨였는데 다행히 반야까지 시원스레 조망이 터져 준다.
철쭉으로 유명한 세석평전에는 웬 진달래만 가득.
오늘따라 상봉이 더욱 날카로워 보이는 이유는 이미 떡실신 모드로 진행된 상태이기 때문?

세석대피소를 출발한지 약 1시간 40분 만에 장터목 도착.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점심을 해결한다. 뙤약볕이라 매우 더운데 사람들은 즐거운지 전부 밖에 있는 테이블에 몰려 앉아 있고, 그나마도 자리가 없어서 주변에 땅바닥에 앉아 식사를 하기도 한다. 물론 당연히도 개념없이 김치찌개 끓인 냄비를 들고 취사장 주위에서 나에게 '씻는 데가 어디예요?' 라고 묻는 아주머니도 등장해 주시고. 내가 좀 무섭게 대답했나 보다. 말없이 자기네 편 사람들에게 가서 '씻는 데 없대' 하면서 순순히 포기하는 걸 보니.
장터목을 거쳐 백무동에 도착한 시각은 산행을 시작한지 약 9시간 20분 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날씨도 덥고 오르는 길을 한신계곡으로 택해서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산행을 마쳤다.




덧글

  • Azafran 2009/05/10 21:34 # 답글

    주말 내내 집에서 뒹굴었는데 시원스런 요즘 지리산 사진을 보여 주시네요. 저번 주에 내려가긴 했는데 그분이 감기로 골골이라 가벼운 계곡 산책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흑흑.
  • layne 2009/05/10 23:42 #

    직업을 그만두고 지리산 언저리로 귀농하는 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것을 보니 지나치게 늙은 것이지요. ^^;; 요 몇년간 얻은 교훈중의 하나는 갈까말까 고민이 되고 에이 지금은 늦었지 싶더라도 가고 싶은 곳으로 출발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주말을 가치있게 만든느 행동이라는 점이지요. 뭐 해외에서 많이 다니셨으니 국내에선 좀 쉬셔도 괜찮.... (쿨럭)
  • 고인돌 2009/05/12 09:15 # 답글

    저는 백무동갈때 인월ic로 나가는데....?^^
    그나저나 한신폭포 사진은 보이질 않네요.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좋은 구경 잘하고 갑니다.
  • layne 2009/05/14 07:44 #

    저질체력에 떡실신 조짐이라서 한신폭포까지 내려가는 일은 엄청난 인내심을 요하더군요. 그래서 이번엔 못 본 척 지나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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