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4일 왕산 樂 - 山

지리산 동부에는 왕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지리산 동부의 유명한 고산습지의 이름은 왕등재이며 웅석봉 인근의 고개 이름은 왕재이고 심지어 산 이름이 왕산이기도 하다. 이번에 들른 곳은 산청군 금서면 일원에 있는 왕산. 굳이 산 자체에 빼어난 자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년 여름에 만만하게 보고 시간때우기로 찾았다가 더위에 지쳐서 중간에 내려왔던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자 다시 찾는다.
산행 코스 : 전 구형왕릉-망경대-왕산-필봉-왕산-유의태 약수터-구형왕릉.
산행 시간 : 약 4.5시간

전 구형왕릉은 가락국의 마지막 왕이었다는 구형왕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저 '전'이라는 말은 '전해진다'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왕릉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해지는데 이 무덤이 왕릉이든 아니든 이 근처에 왕과 관련된 지명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은 어떻게든 실제로 가락국의 왕과 관련한 사건들이 많았다는 뜻이리라.

생초IC로 빠져나가 전 구형왕릉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한 시각은 아침 10시경. 왕산은 뛰어난 경치랄 것도 없고 빼어난 높이랄 것도 없지만 엄밀하게 말해 지리산 동부능선에서 갈라져 나온 능선이므로 지리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출발하기 전에 백두대간 종주 산악회 버스를 보고 왜 여기를 왔을까 의아해 했는데,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방산-웅석봉의 달뜨기 능선을 백두대간의 마지막으로 보는 대부분의 시각과 달리 이쪽도 왕등재로부터 능선으로 이어져 있으니 백두대간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왕산은 유난히 약초가 많다는 사실과 허준의 스승 유의태가 인근에 살면서 약수를 얻으러 다녔다는 구전에 의해 나름대로 이름을 얻고 있는 중이다.

왕릉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10~20분이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어차피 오늘은 원점회귀를 해야 하겠기에 애써 길을 갈라 돌아가는 망경대 방향으로 코스를 정한다. 30분쯤 줄기차게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자 비로소 지능선에 닿는다. 시원한 바람이 가쁜 숨과 흘러내리는 땀을 식혀준다.

망경대까지는 여기서 또 20~30분쯤 줄기차게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다행인 점은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는 구간이 없는 완만하고 지속적인 오르막이라는 것과 그나마 숲길이라서 한낮의 더위를 참을 만 하다는 점.
망경대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옛사람들이 음각으로 뭐라고 글자들을 새겨 두었지만 한문실력이 짧아 커다란 '망경대'라는 글자만 보고 작은 글자들을 읽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덕분에 유래도 모르고 그냥 지나친 셈.
함양 쪽 조망. 멀리 황석-기백쪽 산군이 조망되긴 하는데 흐릿하다.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늘 갔다 와야 할 필봉을 바라보니 한숨이 푹 나온다. 저기를 내려갔다 올라가서 다시 되짚어 와야 한다니. 더위에 포기하고 싶지만 이 때 아니면 언제 또 와보랴 하는 생각에 그냥 진행하기로 한다. 붓처럼 뾰족하다고 해서 필봉이라는데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필봉 뒷쪽은 웅석봉을 위시한 달뜨기 능선.
첫번재 왕산 표지석.
첫번째 왕산 표지석을 지나 10여분쯤 가다 보니 산악회들이 한두팀씩 등장해 소란해진다. 느닷없이 나타난 두번째 왕산 표지석. 나중에 지나가는 분들의 얘기를 듣자 하니 이곳이 새로 만든 표지석이라고. 0.2m 높다나 뭐라나.
상봉은 모습을 드러내기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왕산에서 필봉산까지의 거리는 약 1km.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꽤 경사가 있는 오르막-내리막이 이어지는데다 별로 매너가 없는 산악회 두세 팀과 섞이다 보니 산행이 피곤해진다. 더운 날씨에 숨가빠하며 닿은 필봉산 정상. 뒤로 멀리 상봉-중봉이 보인다.
산청읍 방향.
돌아오면서 다시 상봉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감탄. 저렇게 멀리 있는데 이어서 갈 수 있다니. 지리산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그 감당할 수 없는 크기를 다시 한번 느낀다.
더운 날씨에 왕산 정상 부근을 벗어나 내리막에 들자마자 산악회들은 주위에서 사라지고 다시 적막한 산행이다. 조용하지만 꽤 지루하기도 한 하산을 30-40분쯤 한 끝에 유의태 약수터에 도착. 시원하게 약수나 한모금 마시려고 했더니 지난번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물이 말라 있다. 그나저나 저 우습게 그려놓은 유의태 초상이란.
이어 임도를 10여분 걷고 나서 산행 종료. 구형왕릉을 바라보며. 실제 왕릉은 아닐 것이라고는 하지만 나름 숙연한 분위기를 피할 수 없다.

덧글

  • chungsuk 2009/06/16 11:42 # 답글

    왕산이란 산도 있군요 ;) 정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너무 시원합니다.
  • layne 2009/06/16 22:14 #

    요새 산행하기가 어려운 시절이죠. 점점 더워지고, 조망도 점점 안좋아지고. 다행히 이날은 하늘빛이 그럭저럭 잘 나왔네요. 감사합니다. ^^
  • 고인돌 2009/06/18 10:39 # 답글

    구형왕릉때문에 임도따라 차를타고 한 10분정도 올라간적이 있는곳입니다.
    임도가 하도 길어서...가다 되돌아 왔지만...
    좋은날 왕산에서의 멋진 풍경들 좋습니다.
    망경대아래 암벽에 새겨진것은 비석을 세운공적을 기념한다는 내용으로 사람들 이름을 새겨놓은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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