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음과 피곤함을 무릅쓰고 적는 백만년만의 포스팅. 이건 다 느닷없이 산티아고의 길을 걷겠다고 나선 친구 때문. 친구야, 혹 서로 만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잘 새겨듣고 후회없는 여행이 되길.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프랑스길을 가다 보면 제일 많이 보이는 건 한국사람이다. 물론 백인들 분포가 훨씬 많긴 하지만 그거야 걔네들은 세계 각국에서 온 거고 단일 국가로 따지면 본국인 스페인 다음으로 많은 것이 한국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인터넷에 후기도 넘쳐나고 또 이 길을 걷다가 5일만에 때려친 내가 이런 포스팅을 한다는 게 좀 우습기도 하지만 어쨌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족하겠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기본적으로 아웃도어 활동이다. 그래서 아웃도어에 특화된 의류, 장비들을 준비한 사람들, 즉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따로 준비물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비박짐에서 텐트, 취사도구, 음식을 뺀 정도의 준비물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보통은 프랑스의 남쪽 끝 생장 빠이드뽀에서 시작해서 그날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론세스 바예스에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피레네 산맥 넘는 것을 생략하고 론세스 바예스에서 바로 시작하기도 한다. 보통은 걸어서 다니지만 산악자전거를 이용한 순례자들도 어느 정도 존재한다. 이렇게 해서 St. James(야고보)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의 약 한달 남짓한 여정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캠핑은 기본적으로 허락되지 않으며, 하루 15~20km 정도를 걷고, 그 거리 동안 중간중간에 마을과 가게, 숙소인 알베르게가 존재하니 텐트 같은 것을 짊어지고 다닐 필요도 없고 체력이 남아도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럴 여유도 없다.
1. 등산화.
- 가장 중요한 장비라고 생각하는 것. 물론 운동화를 신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한달 정도 매일 15~20km씩 걷는 여정에서 지옥을 맛보고 싶지 않다면 발에 잘 맞는 편안한 신발이 중요하며, 비에 잘 젖지 않고 땀 배출도 잘 되는 것이 좋다. 게다가 산티아고의 길이 그렇게 험한 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중간중간 산길을 넘기도 하니 중간에 발목이 뒤틀리거나 하는 사태도 방지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잘나가는 캠파라인 등의 등산화는 바위에서 잘 미끄러지지 않지만 반면 쉽게 닳는 단점이 있다. 또 발목을 완전히 덮는 하이컷 등산화는 좋지만 무거우며, 발목이 완전히 드러나는 로우컷 (소위 트레킹화라고 불리우는 정체불명의) 등산화는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에서 자칫하다가는 발목이 돌아갈 수도 있고, 신발 안에 이물질이 많이 들어가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나의 추천은 미드 컷 등산화에 밑창은 비브람 재질이고 고어텍스 내장으로 비에 젖지 않는 등산화일 것. 두꺼운 등산양말을 신고 신어보고 끈을 적당히 조였을 때 등산화 안에서 발이 헛돌거나 너무 꽉 조이지 않는 정도의 크기를 고를 것.
2. 배낭.
- 자기의 모든 살림살이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배낭이 중요하다. 이것저것 싸 넣다 보면 보통 5~10kg 정도의 짐이 들어가는데 이 정도 짊을 지고 걸어가는 게 그렇게 수월한 일은 아니다. 자일 같은 것을 잔뜩 넣어서 실제 배낭 무게와 비슷하게 만들어 메어 보았을 때 어깨가 불편하지 않고 등에 딱 붙어 허리벨트로 하중을 지탱할 수 있는 배낭을 고를 것. 40~50L 정도의 배낭이 적당하다. 비가 왔을 때를 대비해 배낭커버도 반드시 준비할 것.
3. 헤드랜턴 또는 손전등
- 아침에 일찍 길을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해가 뜨기 전에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두우면 다치기 쉬우므로 랜턴은 필수. 손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헤드랜턴이면 더 좋고, 밤에 보통 9시 정도면 모든 알베르게가 소등하기 때문에 책을 읽거나 중간에 화장실에 다녀올 때, 또는 배낭에서 필요한 물건을 꺼낼 때 유용하다. 알베르게 침대에 작은 등을 제공하는 곳들이 있으나 모두 그렇지는 않다.
4. 침낭
- 공립 알베르게는 보통 이불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립 알베르게는 이불을 제공하지만 산티아고의 길은 bed bug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기 때문에 침낭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필수. 보온성과 휴대성을 고려하여 거위털로 된 침낭이 좋으며, 겨울이 아니라면 충전량 300g 정도의 봄-여름용 침낭이면 충분하다. 보통 알베르게에는 베개가 다 제공되지만 이걸 이용하기가 껄끄럽다면 공기를 불어넣어 사용하는 휴대용 베개를 가지고 다녀도 좋다.
5. 의류
- 이건 자기가 걷는 기간의 스페인 북부 온도분포를 고려하여 적절히 준비할 것. 셔츠나 속옷, 양말, 바지는 반드시 땀 흡수와 배출이 잘 되고 스트레치가 잘 되는 기능성 의류를 선택해야 한다. 청바지나 면바지는 최악의 선택이다.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보온 자켓과 비가 왔을 때를 대비한 방수 자켓도 필수. 스페인이 건조한 편이라 빨래는 잘 마르지만 매일매일 빨래를 하는 것도 여의치 않으니 속옷, 양말은 여분을 충분히 준비할 것. 자외선 차단을 위한 모자도 필수. 모자가 방수가 되고 땀 배출이 잘 되는 기능성이라면 더 좋다. 그 외 계절에 어울리는 장갑과 땀을 닦을 수 있는 스포츠타월 등도 준비할 것. 샤워하고 나서 알베르게에서 수건을 따로 제공하지는 않기 때문에 여분의 타월도 준비.
6. 그 외
- 가이드북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길을 걷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냥 섞여서 가기만 해도 길을 잃어버리거나 하루치 거리를 미달성하거나 하지는 않으며 알베르게 같은 데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팜플렛 수준의 간단한 지도로도 충분하다. 단 대도시에서 묵을 때 알베르게를 찾는 데 낭패를 겪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런 경우 가이드북이 있으면 편리하긴 하다.
- 물병과 야외용 컵이 있으면 좋다. 가게가 생각보다 자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간중간 물을 보충하여 들고 다니기 위해서는 물병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다. 그 외 취사도구는 비추. 간혹 음식을 직접 해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공립 알베르게는 대부분 주방에서 요리해서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용할 수 있는 도구도 전자렌지 정도로 국한되어 있다. 밥해먹을 거라고 쌀 2kg사들고 길을 나섰다가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입에 육두문자가 머물렀다가 론세스 바예스에 도착하자마자 먹을 것을 다 버렸던 기억이 있다. 사립 알베르게는 대부분 추가 비용을 내면 저녁을 제공하지만 공립 알베르게는 비용이 절반 수준인 대신 보통 저녁을 제공하지 않는다. 단 뜨거운 물을 이용할 수 있다면 봉지커피를 들고 다니는 것도 괜찮고, 중간에 체력이 떨어졌을 경우를 대비해 초콜릿이나 에너지 바 등을 비상용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 말하지 않아도 선글라스, 선크림, 비누와 치약, 칫솔 등은 다 알아서 준비하리라 믿는다.
- 등산용 스틱은 요긴하게 쓰일 수 있으나 평소에 스틱 이용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오히려 방해물이 될 수 있다.
- 두통약, 소화제 등의 상비약 지참은 필수.
-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현금! 스페인은 유로존이므로 유로화를 사용한다. 공립 알베르게는 1박에 8유로 정도, 사립 알베르게는 15 유로 정도가 보통이다. 사립 알베르게는 아침도 제공하지만 공립은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도시가 아니라면 식당을 찾는 것이 난감할 수 있는데 사립 알베르게에서 10~12유로 정도 추가 금액을 내면 그럴싸한 코스 저녁을 제공한다. 만일 빨래를 알베르게에 맡긴다면 (물론 사립일 경우) 5유로 정도 들며, 길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사 마시면 1.2 유로 정도가 든다. 하루에 쓰는 돈이 절약하면 12유로에서 넉넉히 써도 35 유로 정도면 충분하다.
- 알베르게마다 순례자 패스에 통과 인증 도장을 찍어주니 놓치지 말것. 길을 걷다가 정 체력이 떨어지고 피곤할 경우 중간중간 버스를 이용하는 꼼수도 가능하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순례객들도 꽤 목격. 산티아고까지 모든 길을 다 걸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거리 이상만 걸은 것이 인정된다면 순례 완료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더이상 쓰기 귀찮고 손가락이 아픈 관계로 궁금한 사항은 페이스북 메시지나 여기 댓글로 문의 요망.
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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